자존심 버리면 갓생
본문 말씀: 마가복음 11장 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서론: 겉만 쿨한 척하는 세상, 속은 타들어 가는 우리>
반갑습니다, 블로그 독자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진짜 쿨한 하루’를 시작하시길 축복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와 청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태도 중 하나가 바로 ‘쿨함’입니다.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뒤끝 없고, 세련된 모습을 뜻하죠. 최근 미중 정상회담 뉴스만 봐도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중동 지역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무역 투자를 넓히자며 서로 악수하고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이 "훌륭했다"며 아주 쿨하게 평가했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쿨하지 않습니다. 가장 예민한 대만 문제는 서로 슬쩍 답변을 피했고, 중동은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불안한 휴전 상태입니다. 겉으로는 악수를 하지만, 속으로는 치열하게 밀당을 하며 갈등을 잠복시켜 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말하는 ‘쿨한 척’의 한계입니다. 우리 일상도 비슷하지 않나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대놓고 싸우기는 사나워 보이니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겉으로는 “나 괜찮아, 신경 안 써”라며 쿨한 척 지냅니다. 그리고는 뒤로 가서 조용히 그 사람을 ‘손절’하거나 SNS를 차단해 버리죠. 하지만 혼자 있을 때 그 사람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걷어차고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겉은 쿨한데 속은 전혀 쿨하지 못한, 일종의 ‘가짜 쿨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차원이 다른 ‘진짜 쿨한 용서의 기술’을 제안하십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서 지옥 같은 학대를 당하고 가족을 잃었던 코리텐 붐 여사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여사는 자신을 짓밟았던 원수의 나라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교를 마치고 관객들과 인사하는데 깊숙이 모자를 눌러쓴 한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여사는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그는 수용소 시절, 자신과 언니를 벌거벗겨 모욕하고 온갖 잔인한 짓을 일삼았던 악명 높은 나치 간수였습니다.
그는 여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은혜를 받았다며 악수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순간 여사의 마음속엔 분노가 치밀었고, 당장 뺨을 후려치고 싶었습니다. 그때 여사는 속으로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제 힘으로는 저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저를 도우소서!’
그때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졌단다." 여사는 감정을 내려놓고, 의지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하늘로부터 폭포수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쏟아졌고 마음의 응어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가해자였던 간수 역시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진짜 쿨함이란 상처를 안 받은 척 묻어두거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방법으로 마음의 빚을 완전히 ‘청산’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인생을 바꾸는 ‘진짜 쿨한 용서의 기술’ 3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기술: 밀당 없는 일방적 용서
진짜 쿨한 용서의 첫 번째 기술은 상대방의 태도를 보고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6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고린도후서 5장 18~19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 예화 요즘 세대는 관계에서 ‘밀당’에 익숙합니다. "네가 이만큼 했으니 나도 이만큼만 할게", "네가 사과 안 하면 나도 안 해." 철저히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계산기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할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부를 힘이 있으셨지만, 자기를 비웃고 뺨을 치는 인간들 앞에서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잘못했습니다"라고 빌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먼저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조목조목 따져 묻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님께 다 덮어씌워 처리하셨습니다.
이 십자가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관계에서 구차해지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사과를 하든 안 하든, 내 자존심이 깎일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라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용서를 전폭적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이미 내 마음이 꽉 차 있으니, 상대방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당당함, 이것이 진짜 쿨한 용서의 첫걸음입니다.
2. 내 마음의 방을 지키는 기술: 미움이라는 무거운 가방 버리기
두 번째 기술은 미움과 분노를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않고 즉시 비워버리는 손절의 기술, 즉 ‘내 마음의 방’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2~34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 예화 일평생 시댁 식구들에게 구박을 받아 마음속에 깊은 원한과 미움을 품고 살던 한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얼굴 한쪽이 완전히 굳어버리는 안면 신경통과 마비 증세가 와서 병원을 다니고 금식 기도를 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며 원망했죠.
제가 자매님에게 "마음속 원수를 용서해야 병이 낫습니다"라고 하자, 자매님은 "절대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근거로 처방을 내렸습니다. "자매님, 성경은 당장 그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안 했습니다. 감정은 안 따르더라도 의지적으로 '용서'만 먼저 하십시오."
자매님이 마음을 고쳐먹고 시댁 식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억지로라도 용서의 기도를 올렸을 때, 신기하게도 그 즉시 안면 마비 증세가 풀려버렸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을 감옥에 가두는 게 아니라 내 영혼을 불행과 질병의 감옥에 가두는 미련한 짓입니다. 하나님께 엄청난 은혜를 받아놓고 내게 고작 '백 데나리온' 정도의 상처를 준 사람을 붙잡고 부르르 떨고 있다면, 그 무거운 감정의 가방 때문에 내 인생만 피폐해집니다. 내 육체와 영혼의 건강을 위해 미움의 고리를 단칼에 잘라버리는 것, 그것이 진짜 나를 아끼는 쿨한 용서의 기술입니다.
3. 뒤끝 없이 털어내는 기술: 십자가에서 자존심 청산하기
세 번째 기술은 꽁해 있는 마음을 완전히 털어내고, 관계의 막힌 담을 허물어 버리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에베소서 4장 26~27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 예화 어설프게 쿨한 척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뒤끝이 있다는 점입니다. 말로는 “나 다 잊었어” 해놓고, 다음에 한 번 더 트러블이 생기면 3년 전, 5년 전 이야기까지 다 꺼내서 “너 저번에도 그랬잖아!”라며 과거의 파일을 대방출합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이런 자존심 싸움 때문에 대화가 단절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용서는 하겠는데, 꼴 보기 싫으니 겸상은 안 한다"는 식의 가짜 용서는 마귀에게 틈을 줄 뿐입니다.
성경은 "분을 내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청산하라"고 명하십니다. 오늘 쌓인 분노의 데이터는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삭제 버튼을 누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시며 십자가에 벌거벗겨 매달리셨을 때, 하나님의 자존심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살리려고 자존심을 버리셨는데, 우리의 그 알량한 자존심이 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내 자존심을 십자가에 깨끗이 버리고, 먼저 다가가 "여보, 미안해", "친구야, 밥 먹자" 하며 품어줄 수 있는 태도야말로 뒤끝 없는 가장 세련되고 쿨한 기독교인의 모습입니다.
<결론: 진짜 쿨한 인생을 위한 세 가지 마인드셋>
사랑하는 블로그 독자 여러분, 겉만 쿨한 척하며 속으로는 미움의 독을 품고 사는 삶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진짜 쿨한 용서의 기술 세 가지를 마음에 새깁시다.
- 첫째, 내 사전에 ‘밀당’은 없습니다. 상대방이 사과할 때까지 째째하게 기다리지 마십시오.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의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닮은 자답게 일방적으로 먼저 용서의 손을 내미십시오.
- 둘째, 미움의 데이터를 당일 청산하십시오. 오늘 생긴 억울함과 분노는 해가 지기 전에 십자가 앞에서 완전히 삭제하십시오. 내 마음의 방에 미움이라는 쓰레기를 방치하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최고의 기술입니다.
- 셋째, 자존심을 죽이고 화해의 악수를 청하십시오. 말로만 용서했다고 하고 뾰루퉁해 있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내 자존심을 완전히 버리고, 막힌 담을 허물어 따뜻하게 품어주는 진짜 쿨한 갓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마가복음 11장 25절을 다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며, 내 안의 모든 가짜 쿨함을 버리고 주님의 참된 용서의 기술을 실천하기로 결단합시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입술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원한을 품고 겉으로만 쿨한 척 포장했던 우리의 위선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에서 모든 자존심을 버리시고 우리에게 먼저 화해를 청하셨던 예수님의 그 '진짜 쿨한 사랑'을 배우게 하옵소서.
내 마음에 맺힌 미움과 분노의 가방을 오늘 밤 해가 지기 전에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청산하게 하시고, 내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 수 있는 당당하고 세련된 하늘나라의 대사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죄의 감옥에서 해방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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