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본문 성구: 갈라디아서 5장 24절
<서론 : 영적 브레이크가 고장 난 세상에서 살아남기>
여러분, 굿모닝!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지난 2월 말부터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벌써 80일 넘게 이어지고 있죠. 한편에서는 14개 항의 종전 합의안이 오고 간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잠수함 전력이 증강되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지구촌의 거대한 갈등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결국 인간과 국가의 멈추지 않는 '탐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말합니다. 개인도, 국가도 탐욕에 빠지면 결국 파멸한다고 말이죠. 옛날 황해도 금광에서 금을 캐서 서울로 가던 배가 인천 앞바다에서 파선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살기 위해 몸을 가볍게 하고 헤엄쳐 나갔지만, 한 사내는 자기가 모은 금괴가 너무 아까워 그걸 허리에 잔뜩 묶고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그 금괴의 무게 때문에 그는 다시는 물 위로 떠오르지 못했습니다.
성경 야고보서 1장 15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탐욕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 삶을 침몰시키죠. 오늘 우리는 내 삶을 갉아먹는 이 탐욕을 미련 없이 '손절'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는 비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본론 : 탐욕의 치명적인 알고리즘과 손절 패스워드>
1. 역사 속 '선 넘은' 리더들의 비극적 결말 (탐욕 손절 실패기)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는 부족함이 없는 에덴동산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마귀가 던진 "이거 먹으면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라는 유혹, 즉 '분수를 넘어서는 탐욕'을 손절하지 못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탐욕의 늪은 역사 속 위대한 리더들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은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눈앞의 살진 양과 소떼가 탐이 나 그것들을 슬쩍 남겨두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이를 꾸짖자 사울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지내려고 좋은 걸 남겨둔 겁니다"라며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았죠. 욕심 때문에 말씀을 손절해 버린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결국 사울은 탐욕을 손절하지 못해 왕위를 손절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 왕은 어땠나요? 어느 날 저녁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 탐욕이 불붙었습니다. 그는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 최전방에서 죽게 만드는 끔찍한 살인죄까지 저질렀습니다.
사무엘하 12장 11-12절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윗의 집안에는 칼부림과 배신이 끊이지 않았고,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탐욕을 제때 손절하지 않으면, 이처럼 한순간에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파괴해 버리는 파멸의 알고리즘이 작동합니다.
2. 예수님이 보여주신 '탐욕 Free'의 삶 (완벽한 손절의 정석)
마귀는 아담과 사울, 다윗을 무너뜨렸던 똑같은 탐욕의 치트키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며 가장 굶주렸을 때, 마귀는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며 물질적인 탐욕을 자극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며 탐욕을 즉시 손절하셨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으라는 명예욕의 유혹 앞에서도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받아치셨죠. 마지막으로 높은 산에서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권세를 보여주며 "내게 절하면 다 주겠다"고 속삭였을 때, 예수님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0절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예수 안 믿어도 마귀(세상)의 방식을 따르면 돈 잘 벌고 성공하던데요?"라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마귀도 세상의 임시적인 부귀영화는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영원한 생명과 평안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유혹을 완벽하게 손절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에 탐욕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빈 마음'이셨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너스로 더해주십니다. 세상의 헛된 욕망을 손절할 때, 하늘의 영원한 축복이 시작됩니다.
3. 일상에서 탐욕을 손절하는 3가지 실천 가이드
그렇다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내 안의 탐욕을 확실하게 손절할 수 있을까요?
-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두려움'으로 죄를 손절하십시오. 성경 속 청년 요셉을 보십시오.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끈질기게 동침하자고 유혹했을 때, 요셉은 자신의 옷을 버려두고 그 자리를 탈출했습니다. 요셉이 유혹을 느낄 줄 몰라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얻으리이까"라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죄의 유혹을 단칼에 손절할 수 있었습니다.
- 둘째, 유혹의 환경을 과감히 차단하는 '바라봄의 법칙'으로 환경을 손절하십시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은 청년 시절 기생집에 끊임없이 드나들다가 결단하고 발길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말 위에서 졸고 있는 사이, 영리한 말이 늘 가던 습관대로 김유신을 태우고 기생집 앞으로 가버렸습니다. 기생이 환하게 반기며 다가올 때, 김유신은 단호하게 칼을 뽑아 자신이 아끼던 말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나를 유혹하는 환경을 과감하게 손절하지 않으면 결단은 물거품이 됩니다. 자꾸 로또 대박만 바라보고, 세상의 자극적인 것만 검색하면 내 마음도 영락없이 그곳으로 끌려갑니다. 유혹의 골목을 피하는 '공간 손절'이 필요합니다.
- 셋째, 매일 성령님의 헬프(Help)를 요청하여 육신을 손절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연약합니다. "나 이제 욕심 안 부려야지!" 결심해도 뒤돌아서면 SNS 속 타인의 화려한 삶을 보며 비교하고 부러워하는 게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보혜사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매일 아침 "성령님, 오늘도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탐욕을 손절할 수 있도록 나를 붙잡아 주세요"라고 기도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결론 : 십자가, 탐욕의 연쇄고리를 끊는 곳>
MZ세대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탐욕이라는 과일은 처음에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기 딱 좋을 만큼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입니다. 영혼을 갈아 넣어서라도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면 힙하고 행복할 것 같죠. 하지만 막상 내 안의 탐욕을 손절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면, 결국 삶의 창자가 썩어 들어가는 듯한 영적 고통이 찾아옵니다. 가정이 파탄 나고, 인간관계가 깨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죄를 뜻하는 헬라어 '하마르티아(Hamartia)'는 '과녁에서 빗나가다'라는 뜻입니다. 탐욕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과녁에서 우리를 자꾸만 탈선하게 만듭니다. 이 탈선의 연쇄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패스워드가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오늘 월요일 한 주를 시작하며, 블로그 독자들과 우리 청년들이 마음에 꼭 새겨야 할 세 가지 핵심 메시지로 말씀을 맺습니다.
- 비교 의식을 멈추고, 내게 주신 '분수와 자족'에 집중하십시오. 행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감사함의 크기에서 옵니다.
- 유혹의 자리를 서성이지 말고, 과감하게 '환경을 손절'하십시오. 보는 대로 상상하게 되고, 상상하는 대로 끌려가게 마련입니다.
- 내 힘을 의지하지 말고, 매일 '성령님의 도우심'을 내비게이션 삼아 걸어가십시오.
내 안에서 욕심이 꿈틀거릴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내 안에는 예수님이 사신다!" 이 믿음의 선포로, 세상의 전쟁 같은 탐욕 속에서 '내 안의 탐욕을 멋지게 손절'하고 진정한 평강을 누리는 영적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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