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잿더미에서 피어난 '리얼' 희망 : 부활
본문 성구 : 요한복음 11장 25~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서론 : 미사일 광풍 속에서 들려오는 반전의 소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2026년의 부활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풍경은 그리 평화롭지만은 않습니다. 중동에서 터진 전쟁의 포화, 하늘을 가리는 드론과 미사일 소식에 온 세상이 '공포'라는 전염병에 걸린 듯합니다. 2,000년 전, 마치 로마의 압제와 죽음의 공포 앞에 떨던 제자들의 상황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모든 어둠을 뚫고 한 마디 선포가 들려옵니다. "예수께서 다시 사셨다!"이 소식은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141년 전, 아펜젤러 선교사(1885. 4. 5)가 이 땅에 처음 들어올 때 드렸던 기도처럼,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고 우리를 얽매는 모든 절망의 굴레를 끊어버리는 '반전의 뉴스'입니다. 오늘 이 부활의 에너지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1. 4차원의 삶 : 부활 신앙은 '다른 차원의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MZ세대는 확실한 것을 좋아하죠. 당시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고 '팩트'를 따지던 현실론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두개인들입니다. 그들은 "죽으면 끝이지, 부활이 어디 있느냐"며 비아냥거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좁은 시야를 깨뜨리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2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예화] 변화산의 신비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광채가 났습니다.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셨죠. 제자들은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죽음이 끝이 아니구나! 우리가 보는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구나!" 부활은 단순히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는 '좀비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갓생(God-生)'입니다..
2. 현실 직시 : 부활 신앙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직시'에서 옵니다.
요즘 우리 청년들은 취업, 저출산, 갈등 등 무거운 짐을 지고 삽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게임이나 SNS 등으로 잠시 현실을 잊으려 '도피'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명은 힘이 없고 금방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부활의 생명은 다릅니다.
요한1서 5장 11~12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화] 빌 위더스의 'Lean on me' 그래미상을 휩쓴 전설적인 가수 빌 위더스는 흑인 빈민가 출신으로 온갖 차별과 가난을 겪었습니다. 그를 지탱해 준 것은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부활 생명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 교회에서 부르던 찬송을 떠올리며 **'Lean on me(나에게 기대세요)'**라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사실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 쓰러질 것 같을 때,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 기대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현실을 도망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내가 죽음을 이겼으니, 너도 이 현실을 이길 수 있다"며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3. 게임 체인저 : 부활 신앙은 세상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곧 부활의 역사입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활 신앙이 있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나라가 죽어도 다시 살 것"이라는 믿음이 대한민국을 깨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부활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티켓이 아닙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영원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물질이나 지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재앙의 소식 속에서도 우리가 소망을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이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결론 : 오늘 나에게 던지는 주님의 질문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질문에 응답하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1). '영원한 소망'이 생깁니다. 어떠한 고난이나 십자가 앞에서도 "그 다음은 부활이다"라는 확신이 여러분을 버티게 할 것입니다.
2). '진정한 생명'를 경험합니다. 돈이나 사람의 위로가 아닌,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님의 품에 기댈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생명의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세상을 살리는 증인'이 됩니다. 불평과 절망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는 부활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2026년 부활절, 여러분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부활의 불꽃이 타오르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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